져키에서 가장 만연한 문제 : 내가 이전에 알고 싶었던 10가지

애완고양이(愛玩動物)이라는 단어 중에 완(玩)은 노리개를 말한다. 반려묘이란 노리개로 기르는 동물이다. 거꾸로 아무리 노리개라 해도 다른 요즘세대들에겐 그냥 동물일 뿐이다. 노리개란 가진 요즘세대에게만 해당하는 단어가지 일부분 지금세대에게 강제할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는데 정작 인간관계는 더 삭막해지고 개에게 더 나은 일들만 일어날 것 같아 씁쓸하다. 개 팔자가 상팔자는 내 신세가 처량할 경우 놀고 있는 개를 보며 하는 탄식이다. 특히 정치판은 개판인데 개들에게는 천국이라 말끝낸다.

한 경로당에서 처음엔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린가? 하다 뒤에 이어지는 설명를 듣고 깜짝 놀랐다. 너무 멋진 '시대 풍자'가 아니던가 '아하, 그 단어가 맞네.' 개를 관리하는 정성이 엄마를 모시는 것보다 몇 배나 더한 세상을 보고 꾸짖는지, 탄식파악는 몰라도 내가 하고픈 말이었다.

우스개로 넘길 일이 아니다. 부모님 간식 고민은 안 해도 개 간식을 먼저 챙기고 부모님 병환은 나 몰라라 하면서 개가 병이 나면 동물병원 위치부터 찾아보는 세상이 아니던가.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누굴 제일 먼저 병원으로 데려갈까, 고민할 져키 일 또한 아니지 않는가.

심지어 부모님 돌아가시면 4일 탈상(脫喪)에 일부분 걸 다 끝내 처리다만, 개 죽으면 테블릿 사진, 동영상에다, 탈상은 커녕 일년내내 계속해서 들여다보며 눈물 찔끔거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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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야 이런 의식조차도 없었을지라도 저런 요즘세대들에겐 부모가 마음 밖의 존재파악도 모른다. 지하철에 강아지를 안고 탄 젊은 여성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내 새끼! 내 새끼!" 하니까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혼잣단어로 "여자가 무슨 수로 육체를 휘둘러 저걸 낳았을꼬." 하더라는 유머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말인가.

개 동일한 인생이란 말의 본내용은 천대받고 천대받는 목숨이란 의미가다. 허나 이젠 인간과 경쟁하는 것을 넘어 상전(上典)으로 모시는 세상으로 변했으니 천지개벽(天地開闢)인 셈이다.

부모를 개함께 모셔라.'라는 뜻이 인지되더라. 개가 사료를 잘 먹지 않으면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아픈 듯이 보이면 재빨리 동물병원으로 데려간다. 추울세라 더울세라 노심초사. 부모 돌가을을 개 같이만 하면 좋으련만, 더는 말고 개 다같이 내용이다.

애완동물을 기르거나 좋아하는 취미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고 이익을 취하는 일이 한 직업으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다. 애완 강아지을 중개하거나 사육에 요구되는 물품을 구매점도 즐비하다. 동물병원 심지어 동물 모텔, 장례식장까지 있으니 전부에 대한 처우가 인간보다 한 발 더 나간 듯하다. 노엄마는 오죽하면 차라리 개새끼(?)가 되고 싶다며 한숨을 내쉴까 뜻이다.

어쨌든 살기 나은 세상이 왔건만 정작 인간관계는 더 삭막해지고 개에게 더 나은 일들만 일어날 것 같아 씁쓸하다.​ 충(忠)이 되면 효(孝)가 되어 예(禮)가 있는 이웃사랑, 봉사공동체, 사람 냄새가 향기 되어 서로 돌가을으로 관계하는 이웃공동체가 살아나는 백의민족의 저력을 생각 좀 하며 살고 싶다. 부모를 개함께 모셔라. 개보다 그 이상으로 모시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끝낸다.